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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June Vol.33 No.2 ISSN 1598-8384

자유기고

서주현 교수
일상과 화학과 할일

국민대학교 바이오발효융합학과
서주현 교수 E-mail : joohyunseo@kookmin.ac.kr


본 글은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의 전개로, 보시는 분에 따라 사이키델릭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저희 집은 맞벌이인 관계로, 와이프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제가 저희 집 아기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날이 많습니다. 유치원까지 가깝긴 하지만, 아기랑 둘이서 걸어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거리인지라, 제 똥차로 같이 출근합니다. 굳이 제 차를 똥차라고 언급한 이유는,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잦은 수리를 해야하는 점을 언급하고자 고생하는 제 차를 굳이 그렇게 언급하였습니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수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 이후에 차 문을 열 때마다 ethyl acetate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아빠 입장에서 신경이 쓰여서 차 문을 열어놓고는 '조금 있다가 타자~' 합니다. 우선 한 고비 넘깁니다. 유치원에 도착했더니, 최근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아기를 반기시는 선생님의 두 손에 체온계와 손세정제가 들려져 있습니다. 저한테도 손세정제를 한 번 짜주십니다. 손을 몇 번 비비니 언제 젤이 있었냐는 듯 손바닥이 뽀송뽀송해집니다. 알코올 냄새도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알코올 이외에 손세정제 성분이 피부에 흡수 되는 건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손을 비비고 있는 아기를 보게 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건 그냥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 간지 한 달도 안되어 아직 선생님이 낯선지 제 다리 뒤에 숨고 안들어가려고 합니다. 선생님과 한 팀을 이루어 아기를 달래서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서둘러 학교로 향합니다. 저희 집에서 학교까지는 50 km에 육박하는 거리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냅니다. 365일 차가 막히는 분당수서로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하면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종종 멍 때리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이 납니다. 감기 바이러스의 단백질도 conserved region이 있을텐데, 왜 감기는 항체가 없어 매번 고생해야 할까. 이번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코로나 단백질 구조 예측해서, 바이러스 약 구조들 모아다가 붙여볼걸...그러면 논문 하나 썼을지도 모르는데…이놈의 귀차니즘 땜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나온 배가 들어가질 않으니 저녁식사 양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나온 배를 보고 있자니 제제학 교과서에 쓰여 있던, '체내 지방이 소수성 약물의 저장고 및 약물을 천천히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내 몸에 흡수된 온갖 케미칼이 다 저기에 있겠군 하는 망상이 듭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 한 쪽을 보니 건강보조식품들이 잔뜩 있습니다. 천연 성분이라고 자랑하는 병도 있지만 그런 말이 없는 병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아마도 유기합성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갑자기 저거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량 화합물은 건강에 영향이 없을 거라는 다짐(혹은 바램)을 새삼 하게 됩니다.

그림1
그림 1. 이정도면 보신족인가.jpg


제작년에 방문했던 제주도의 음료회사가 떠오릅니다. 십자화과(十字花科) 식물 주스의 설포라판 함량을 높이는 연구의 자문을 위해 후배 교수와 함께 방문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식품에 재조합 효소를 사용하지 못하니, 주스의 설포라판 함량을 높이기 위한 myrosinase는 원물로부터 partial purification해서 써야합니다. 현재 그 회사와 같이 연구하고 있는 후배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니, partial purification 한 효소가 활성은 있는데, 원물에서 substrate인 glucosinolate도 들쭉날쭉하고, myrosinase의 함량도 들쭉날쭉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몇가지 원물을 갈아서 섞어서 식물 주스에 있는 활성성분의 함량을 높이는 연구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그림2
그림 2. Myrosinase를 이용한 Glucosinolate로부터의 isothiocyanate 생성 반응



저녁을 먹은 후에 와이프와 같이 아기 목욕을 시킵니다. 아기용 샴푸와 바디워시에 온통 'natural', 'organic' 등의 단어가 써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PAGE용 running buffer를 만들 때 나던 SDS 냄새가 납니다. 응? 왜 SDS 냄새가…SDS랑 SLS는 안좋다고 하던데…그나저나 옛날에 running buffer 만들 때 SDS는 왜 그렇게 가루가 많이 날리던지…많이 맡았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연'이라는 말이 써져 있는 세정제에는 뭐가 들었나 들여다 봅니다. 코코글루코사이드 등등 이런 것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림3
그림 3. 인터넷에서 찾은 코코글루코사이드의 화학구조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svalleycosmetics&logNo=22114563495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Carbohydrate와 fatty alcohol이 ether 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특별하게 자극적일 것 같진 않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저거 어떻게 분해하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착한 미생물들이 알아서 잘 분해하겠지라는 생각이 같이 듭니다. Aliphatic chain 부분을 보니 탄소가 10개짜리 입니다. 탄소 10개 짜리 fatty acid 혹은 fatty alcohol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코코글루코사이드 비슷한 걸 효소로 만들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Fatty alcohol 부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Palm oil이 생각납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Palm 농장이 많은 동남아 국가에서는 Palm debris가 큰 문제라서 Palm debris를 활용하는 연구를 수행한다고 하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외국인에게도 해준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동남아로…? 그건 아니야로 끝없는 망상을 끝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아침은 와이프가 아기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바로 학교로 가도 됩니다. 차에 탔더니 ethyl acetate 비슷한 냄새가 여전히 납니다. 조금 덜한 것 같기도 합니다. 환기는 무슨…귀찮아서 바로 출발합니다.